레거시 부진에 DB하이텍·SK키파운드리 '한숨'...소니 손잡은 TSMC


성숙(레거시) 공정 반도체를 제조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가 전방 수요 둔화에 따른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주문량이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중국 업체의 공격적인 확장 전략으로 재고 소진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는 상황이다. 레거시 파운드리들은 가격 하락 압박을 막기 위해 전략 고객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화합물반도체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레거시 파운드리는 지난해부터 스마트폰과 개인용컴퓨터(PC), TV 등 전반적인 완제품 수요 둔화로 인한 높은 재고 문제로 씨름해 왔다.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재고 규모와 함께 저조한 공장 가동률이 계속되며 실적이 뒷걸음치고 있다.
주로 선단 공정을 활용해 스마트폰용 프로세서나 AI 반도체 등 특수 제품을 제작하는 12인치 파운드리는 직경 300밀리미터(㎜) 크기의 반도체원판(웨이퍼)으로 생산되지만, 레거시 파운드리는 주로 8인치, 직경 200㎜ 웨이퍼를 활용해 주로 산업 전반에 쓰이는 다양한 반도체를 만든다. 특히 전력과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와 삼성전자 등 선단공정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매출의 일정 부분을 레거시 공장에서 낸다. 국내 DB하이텍과 SK키파운드리처럼 8인치 공정만 갖춘 기업도 있다.
DB하이텍의 올해 1분기 실적은 연결기준 매출 2615억원, 영업이익 411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2.3%, 50.4% 줄었다. 회사 측은 "경기둔화로 평균판매가격(ASP)의 하락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8인치 파운드리 자회사인 SK키파운드리는 지난해 67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레거시 파운드리 시장은 올해 상반기까지 재고 조정이 이어지며 가격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재고 정상화와 함께 스마트폰 수요 회복으로 평균판매가격(ASP) 감소는 정체될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의 파운드리 증설에 따른 경쟁 우려가 변수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레거시 파운드리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높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오는 2027년까지 28나노미터(㎚) 이상 레거시 파운드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생산 비중은 29%에서 33%로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렌드포스는 "중국이 현지 제조 시설을 강화하면서 레거시 공정의 대규모 확장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가격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며 "(중국과)유사한 공정, 생산능력을 가진 파운드리는 고객 이탈과 가격 압박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레거시 파운드리 업체들의 가동률은 대만과 한국 기업을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내 반도체 고객들이 현지 파운드리를 이용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트렌드포스가 전망하는 올해 1분기 TSMC와 삼성전자의 레거시 공장 가동률은 각각 60%, 50% 수준이다. 90%를 넘나들었던 2021년에 비해 크게 저조하다.

레거시 파운드리의 공급과잉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제조사들은 각자 다양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대만 TSMC는 전략 고객과 협력해 전용 특수 제품 제조시설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수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특정 제품에 집중해 가동률과 수익성을 지키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2월 TSMC가 일본에 마련한 공장은 소니를 비롯한 핵심 일본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 선단 공정뿐만 아니라 22㎚와 28㎚ 제조시설을 갖췄다. 이에 그치지 않고 TSMC는 일본에 40㎚ 공정을 갖춘 두 번째 공장을, 유럽에는 자동차용 반도체 고객을 겨냥한 특수 기술 공장을 올해 하반기부터 건설할 계획이다.
DB하이텍은 고부가 제품인 화합물 기반 전력반도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질화갈륨(GaN)과 탄화규(SiC) 기반 반도체를 준비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나선다. 화합물을 활용해 전력반도체를 제조하면 높은 전압과 열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 산업용 반도체 시장에서 기존 제품을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격적인 양산은 내년부터 시작된다. 회사 측은 "차세대 전력반도체 개발은 순항 중이며 연내 개발 완료가 목표"라고 말했다.